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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씨 갈산문중 계보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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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밀성)박씨 갈산문중 계보 총설>

이 홈페이지의 핵심부분 입니다.

여기에서는  우리 나라의 국통이 어떻게

이어 내려 왔는지 개인적으로 조명하고

신라 시조왕으로부터 69세에 이르는

갈산(葛山) 문중의 계보를 간단한 계통도를 통하여

쉽게 이해한 다음 다시

밀양(밀성)박씨 돈재공파 갈산문중 상세보(詳細譜)를 통해

선조들의 생몰년대(生沒年代),

배위(配位) 및 묘소(墓所), 왕위(王位), 관위(官位), 유사(遺事),

역사(歷史)등을 알아보고  족보에 나오는

용어(用語)들에 대해서도 그때그때 설명코자 합니다.

<갈산부락 뒤 천룡의 모습>

 

 

 - 순    서 -

 

 

   우리 민족의 국통(國統)

 

<문서의 처음>

인류의 기원은 북방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고고학, 언어학, 형질학적으로 내려진 종합적 결론도 인류의 북방기원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과연 오늘의 한민족인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그 뿌리는 또한 누구일까? 한번쯤은 누구나 의구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문제다.

우리민족은 북방으로부터 육로와 해로(海路)를 따라 한반도에 이동하여 동방문화권을 형성했으며 그 혈통의 원류는 상고시대의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한다.

환인에서 단군에 이르는 시대를 3위 성조시대(三位聖朝時代)라 일컬어 오지만 우리 나라 역사를 지금부터 2,300년만 거슬러 올라가면 문헌의 미비와 그 동안 고고학적 검증이 부진해 학계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리고 아득한 신화시대로 치부해 버리고 말기 일쑤였다.

환인, 환웅, 단군은 상계(上計),중계(中計),하계(下計)로 내려오며 실재로 살다간 역사의 창업자임에도 환국 → 배달국 → 단군 조선 →북부여 → 고구려로 이어져 내려오는 과정에서 뿌리역사에 관한 내용이 모두 빠져 한민족사의 국통정립에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는데 이러한 원인은 첫째는 우리민족의 잘못이지만 역사적으로 중국의 한족과 일제의 의도적인 한국사 왜곡에 피해 입은 바가 컸던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대주의 사관 내지는 일제의 식민사관을 철저히 배제한 정통도가사관(正統道家史觀)에 입각하여 한민족사의 국통(國統)을 간략히 정리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1. 환     국

    <문서의 처음>

이 시대는 우리민족이 아직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이며 중국의 천산(天山)동방에 자리하여 환인천제(桓因天帝)가 백성을 교화하던 시기다.

즉 천산(높이:2,700m)의 동방에 위치한 광명의 나라 환국(桓國)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에도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는 말이 나오  는데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는 뜻이다. 환국은 서기전 7199년부터 서기전3898년까지 3301년간 7명의 환인천제가 차례로 대를 이어 다스렸으며 성경의 창세기와 버금가는 시기이기도 하다.7세의 환인이 3천여 년 간 다스렸다면 환인 1세대가 450년을 넘게 산 것으로 되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창세기에 홍수 이전 사람들을 보면 아담은 130세에 아들을 낳고 930년을 살았고 에노스는 905년을 살았으며 케난은 910년,야렛은 960년,에녹은 365년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는 인간의 영성(靈性)이 밝고 환경과 조화되어 오래 살았던 것이다.

7세 환인은 나라를 12개의 환국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환인과 12환국은 다음과 같다.

* 7세 환인: 제1세 안파견(安巴堅)환인, 제2세 혁서(赫胥)환인, 제3 세 고시리(古是利)환인, 제4세 주우양(朱于襄)환인, 제5세 석제임(釋提壬)환인,제6세 구을리(邱乙利)환인, 제7세 지위리(智爲利)환인  

 

* 환국의 12 분국 : ①비리국(卑離國)  ②양운국(養雲國)   ③구막한국(寇莫汗國)  ④구다천국(句茶川國) ⑤일군국(一群國) ⑥우루국(虞婁國) ⑦객현한국(客賢汗國) ⑧구모액국(句牟額國) ⑨매구여국(賣句餘國) ⑩사납아국(斯納阿國) ⑪선비국(鮮裨國) ⑫수밀이국(須密爾國)  

   

일본제국주의시절 경성제대에 주구(朱狗)였던 이마니시류(今西龍)라는 자가 있었다. 그가 삼국유사의 석유환국(昔有桓國)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변조하였다. 국(國)자를 인(因)자로 변조하여 일제의 한국강점기를 틈타 '환국 → 배달국 → 조선'의 창업자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조리 신화의 인물로 몰아붙여 민족사의 뿌리를 제거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삼국유사 정덕본(正德本)에는 원본 그대로 석유환국(昔有桓國)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환인, 환웅, 단군은 본래 제정일치시대에 제사장을 겸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최고 지도자를 일컫는 호칭으로 '1세 환인, 2세 환인-, 1세 환웅, 2세환웅- , 1세 단군, 2 세단군.......' 이런 식으로 부른다.

환국은 시베리아 전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실로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삼성기 上下) 이 환국의 문화는 인류문명사의 제2변기라 할 수 있는 약 6000년 전에 기후 변동에 따른 인류의 이동과 더불어 동서 4대문명의 발상지로 흘러들어 갔으며 요즈음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가 숱하게 제기 되고 있기도 하다.

 

 

 

   2. 배    달    국

     <문서의 처음>

이 때는 환웅천황(桓雄天皇)들이 백성을 교화하고 다스리던 시대다. 환국(桓國)의 문명권이 동서 4대 문명권으로 분기해 나갔는데 환국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은 누구인가?

환국말기에 환국의 통치자 환인(桓因)은 서자부(庶子部)의 수장(首長)인 환웅(桓雄)에게 인간을 널리 구하라는 명(命)을 내리어 동방의 태백산으로 파견하였는데 태백산은 삼신산 또는 백두산을 일컫는다.(삼국유사 고조선기)

1대 환웅은 환인이 내려준 천부인 3개와 동방문명 개척단 3,000명을 이끌고 동방의 태백산에 정착하여 원주민인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통합해  수도를 신시(神市)에 정하고 국호를 배달(倍達)이라 하여 새나라를 건설했던 것이다. 환웅천황은 백성들에게 천경신고(天經神誥:天符經, 三一神誥)를 가르쳐 교화 하였다.(북애자 :규원사화,태시기편) 그런데 웅씨족은 순종하여 광명의 백성(桓民)으로 교화되었고 호족은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오늘날도 우리민족을 배달민족, 배달겨례 등으로 이야기하는데 배달이란 말은 환웅천황이 다스렸던 이 배달국에서 비롯된 것이니 배달이란 말을 쓸 때는 의미를 분명히 알고 써야한다. 배달국은  서기전 3898년에서 서기전 2333년까지 1565년간 18명의 환웅천황이 대를 이어 다스렸다.

1세 환웅은 배달(倍達)환웅이며 94년 재위에 120세를 살았고 마지막 18세는 거불단(居弗檀)환웅인데 재위 48년에 82세를 살았다.

환웅중에 중국의 국조 황제와 전쟁하여 황제를 굴복시킨 분이 있는데 바로 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이다. 일명은 치우(蚩尤)천황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중국본토 여기저기에 치우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를 치우비(蚩尤碑)라고 하며 중국 고대사에 유명한 분이다. 그러나 중국역사에는  황제가 치우를 이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치우천황은 109년 재위에 151세를 살았다.  

 

 

 

 

  3. 조     선  (= 고조선 = 단군조선)

<문서의 처음>

1990년도 이후 우리 나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단군왕검이 서기전 2333년에 고조선을 개국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국한 사실만 있지 단군이 47대 까지 이어지며 서기전 2333년부터 서기전 238년까지 2096년간  나라를 다스린 주요 역사적 사실이 없다.  

또 고조선의 끝 왕이 준왕(準王)이라고 하나 전해오는 도가사서(道家史書)에 의하면 고조선의 남삼한(南三韓)의 하나인 번조선(番朝鮮)의 마지막 왕이라는 것이다.

단군 성조는 배달국 말기 신묘(辛卯:서기전 2370)년 5월2일에 탄생하였으며 38세 되던 무진(戊辰:서기전 2333)년에 배달국 말기 혼란을 바로잡고 아사달에서 천제로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다.(단군세기)

단군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며 어머니는 웅씨(熊氏)왕녀다. 또 왕비는 비서갑(斐西岬)에 사는 하백(河伯)의 여식(女息)인데 이름은  낙빈(嬪)이요  탄신일은 7월 16일이다. *자는 推에서 제방변을 빼고 各자를 쓴다.

단군성조는 환국 →배달국으로 이어온 대도정신을 정통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고조선의 전 영토를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지금의 만주일대인 진한은 단군 천왕이 직접통치하고 한반도인 마한과 요서. 북경일대인 변한은 부단군격인 왕을 두어 다스렸다.

단군조선시대는 동방문화권을 통일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중국의 황하, 양쯔강 유역과 만주 한반도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통치한 한민족문화사 최대의 전성기였다.  

이러한 사실이 학술연구를 통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기는 하나 구소련이나 중국학자등 외국사람들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동이 족이 중국 한족에 밀려 과거 전성기의 역사문화를 잃어버리고 상계, 중계, 하계의 3위성조시대를 신화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단군 사당에서 단군 성조를 모시는 것조차 미신시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제고하여 볼일이다.  

고조선은 47세 고열가(古列加)단군에 이르기까지 2096년간 지속되다가  서기전 238년에 망하고 말았는데 이후는 열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고증 : 단군세기,단기고사,규원사화)  

 

 

 

 

  4. 열 국 시 대

   <문서의 처음>

           ○ 북부여(北夫餘) :서기전 239년 ∼ 서기전58년

           ○ 남삼한(南三韓) :서기전 194년 ∼ 서기8년

              - 마한(馬韓)

              - 진한(辰韓)

              - 변한(弁韓)

           ○ 최씨 낙랑국(崔氏 樂浪國) :서기전 195년경 ∼ 서기37년

           ○ 동옥저(東沃沮): ?

 

열국시대는 단군 성조가 세운 고조선이 여러 나라로 분열하여 성장하는 시대인데 그 나라들의 대강은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북부여는 나중에  해모수(解慕漱)가 건국한 부여(夫餘)로 이어지며 부여는 후일 고구려에 복속하게 된다.

북부여는 부족연맹체제이나 삼한은 연맹왕국체제인데 남삼한중 마한은 대체로 충청, 전라지방이고 변한은 경남 해안지방이며 진한은 경북 지방이었고 수십 개의 나라가 있었다.

마한은 목지국(目支國), 백제국(伯濟國),등으로 이루어 졌으나 백제국을 계승한 백제(百濟)가 통일하게 되며 진한은 기열국(己說國),사로국(斯盧國)등인데 사로국을 계승한 신라가 병합했다.

또 변한은 아라가야,상산가야,고령가야,금관가야,대가야,소가야 등으로 분열했다가 대가야(大伽倻)와 금관가야(金官伽倻)로 통합되었다. 금관가야의 시조는 김씨며 수로왕(首露王)인데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며 후일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을 배출하게 된다.

동옥저는 옥저(沃沮),예맥(濊貊)으로 이어져 고구려에 복속하고 낙랑국은 낙랑군,대방군으로 이어져 서기 313년 역시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5. 사 국 시 대

     <문서의 처음>

  ○ 고구려(高句麗) : 서기전 37년 ∼ 서기 668년(시조:高朱蒙)

  ○ 백  제(百濟)   : 서기전 18년 ∼ 서기 668년(시조:夫餘氏 溫祚)

  ○ 신  라(新羅)   : 서기전 57년 ∼ 서기 935년(시조:朴赫居世)

  ○ 가  야(伽倻)   : 서기   42년 ∼ 서기 532년(시조:金首露)

 

한반도는 6세기까지 4국으로 분열 발전하다가 신라가 가야를 병합한 이후는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이 정립하여 팽팽한 긴장 속에서 성장하게 된다.

삼국은 서로 적대관계에 있기도 하고 동맹관계에 있기도 하였는데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여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의 사위를 죽인 것이 원한관계가 되어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 들어 연합군을 형성한 후 백제를 멸망 시켰으며(660년) 이어 8연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까지 멸망시키니(668년)  3국으로 정립해있던 한반도는 신라에 의해 통일을 보게 되었다.

3국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 당위성은 예정되어 있기도 하였으며 신라가 3국통일을 이룬 것은 대국적 견지에서 시작된 것이기는 하나 사적인 원한관계에서도 비롯되었음을 깊이 상기해 볼일이다. 인간사 개인문제도 그와 같은 것이다.

 

 

 

 

 6. 남 북  국  시 대

<문서의 처음> 

           ○ 북 →발해(渤海 : 대진국)) : 서기 668년 ∼ 서기 936년

           ○ 남 →통일신라(統一新羅)   : 서기 668년 ∼ 서기 935년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신라와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당의 영주(지금의 朝陽)에 강제 이주 시켰다.

699년 영주에서 거란족이 반란을 일으켜  혼란이 일어나자 고구려 유장 대조영(大祚榮)이 말갈족과 고구려를 탈출하여 고구려 영토였던 동모산에 나라를 세우고  진국왕(震國王)이라 칭했다. 이후 대조영의 세력이 커지자 당은 대조영을 발해군왕에 봉함으로서 이후 발해라 불렀다.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이요 피지배층은 말갈족으로 구성된 복합국가였는데 당과 신라와는 항쟁관계였으며 일본과는 가깝게 지냈다. 발해는 14대 애왕(哀王)에 이르러 거란족이 세운 요(遼) 나라의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936년 멸망한 후 우리의 역사권에서 사라졌다.

신라는 크게 상대, 중대, 하대로 구분한다. 중대와 하대는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한다. 중대는 제29대 무열왕부터 36대 혜공왕까지를 말하며 연대로는 654년∼780년까지다. 이때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전제왕권이 확립되어 문화의 황금기를 이룬 시기다.

37대 선덕왕부터 56대 경순왕까지는 하대에 해당하며 연대로는 780년∼935년까지다. 하대에는 155년동안 20명의 왕이 교체되는 가운데 왕권이 불안정하여 귀족연립적인 정치형태를 띠면서 정치,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신라 말기에 가서 한반도는 후백제, 후 고구려, 신라 등 후삼국으로 갈라져 다투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게 935년 신라가 복속하고 936년에 견훤이 세운 후백제가 멸망함으로서 후삼국은 재통일을 보게 되었다.

 

 

 

 

   7.  고          려  

<문서의 처음>

           ○ 태조(太祖) : 왕건(王建:877∼943)

           ○ 년     대  : 서기 918년 ∼ 서기 1392년

           ○ 관계 국가  : 요(遼),금(金),원(元)

                           - 요와 금은 동이족이 세운 나라들이나 한족에 흡수되어                              혈통이 사라졌다.

918년 고려를 세운 왕건은 호족세력을 기반으로 후삼국의 사회혼란을 수습하여 민족을 재통일하였다. 그러나 12세기 이래로 귀족들의 토지사유화 경향이 나타나 국가재정의 궁핍을 초래했고 지나치게 문치주의로 흐르다 무신의 난이 일어난 이래 60년에 걸친 무인집권 기간이 있었다.

뒤이어 몽고의 침입과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자주성에 장애를 받았으며 말기에  정치, 사회적인 혼란 및 수 백여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과 원과 명나라의 교체기의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하에서 이성계를 위시한 신진세력들에 의해 역성혁명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8.  조          선  

<문서의 처음>

 

           ○ 태조(太祖) : 이성계(李成桂:1335∼1408)

           ○ 년     대  : 서기 1392년 ∼ 서기 1910년

           ○ 관계 국가  : 명(明), 청(淸)

                           - 청 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나 한족에                              흡수되어 혈통이 사라졌다. 명나라는 동이                              족과는 관계가 없다.

 

고려를 이은 조선왕조는 15세기 초기에는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되면서 국력이 크게 신장하였다. 세종 때의 한글창제는 가히 불멸의 문화적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6세기 이래로 다시 동요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국난을 맞았고 당쟁은 더욱 격화되어 양반사회를 분열과 침체에 빠지게 하였다.18세기에는 성리학의 전근대성을 탈피하려는 실학(實學)이 대두되었으나 19세기에 접어들어 세도정치로 말미암아 정계는 파국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대원군이 집권하여 전제왕권을 강화하려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근대사회를 예비치 못했던 정계는 개화사상과 척화사상의 갈등 속에서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혁명,갑오경장,을미사변,아관파천,청일전쟁,노일전쟁등 극심한 혼란과 더불어 제국주의 세력에 능동적 대처를 못하고 마침내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기에 이르렀다.

 

 

 

 

 9.  임  시  정  부 (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서의 처음>

 

           ○ 년     대  : 서기 1919년 ∼ 서기 1945년

 

1919년 3.1운동 직후 일본식민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할 필요성을 통감한 애국지사들이 상해에 집결하여 4월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  하고 17일에 임시정부를 구성하여 관제를 선포하였다. 6월11일 임시 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임시 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했다.

1926년 국무령제를 채택하여 김 구 등이 국무령이 되어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32년 항주로 옮겼다가 중국정부와 함께 중경으로 갔으며 1940년에는 광복군을 강화하였고 1945년 광복 후 11월29일 주요 간부들이  개인자격으로 귀국했으나 임시정부의 내각. 정책은 계승되지 못했다.

 

 

 

 10.  남 북 분 단 시 대

<문서의 처음>

           ○ 남     한 : 대한민국(1948∼    )

           ○ 북     한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1948∼     )

일제 강점기 36년의 시련기 동안 우리민족의 항일 투쟁은 끊임이 없었으며 세계 제1차대전과 제2차대전이 있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1945년 광복을 맞았으나 광복은 국토분단과 민족분열이라는 또 다른 난관을 가져왔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으나 1950년 북한 공산군의 불법남침으로 시작된 6.25는 우리 민족사에 미증유(未曾有)의 대 시련을 안겨 수백만의 인명을 앗아가고 전 국토를 황폐화 시켰으며 유엔군까지 참전한 세계적 전쟁이었다.

3년을 끌어간 전쟁의 참화에 이어 정치적 불안은 계속됐고 이는 4.19혁명,5.16군사 쿠데타로 이어졌으며 제 3공화국이 들어섰다. 이 기간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72년 10월 유신으로 제4공화국을 맞았으나  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파국이 왔으며 80년 새 헌법이 제정되어 제5공화국이 들어서서 7년을 지속하는 동안 완전한 서구 민주시민사회를 열망하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87년 6.29선언과 더불어 민주화된 새 헌법을 제정하여 제6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제6공 이후 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였으며 90년대 초반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사회 각분야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으나 개혁세력의 미흡으로 실패했으며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 I M F 구제금융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98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정부수립 50년만에 처음으로 여. 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이제는 21세기 세계 문명사를 주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