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효 재(永 孝 齋) -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

 

 바로가기 ☞   1. 영효재(永孝齋)의 유래       2. 돈재공파(遯齋公派) 남원문중 계보(系譜)      3. 영효재 탐방(探訪)    4. 행정구역 안내

1. 영효재(永孝齋)의 유래     

영효재(永孝齋)는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에 소재하고 있다.

밀성박씨 도평의사공 후 돈재공파 후손의 한 갈래가  남원시 식정동(植亭洞)에 세거(世居)하여 오고 있는데 영효재(永孝齋)는 바로 돈재공파 식정문중이 선영을 봉향하는 사우(祠宇)인 것이다.

 

박혁거세 신라 시조왕 이래 박씨의 세계(世系)는 시조왕 4세인 일성왕과 파사왕대에서 큰 줄기로 갈라졌다.  

파사왕계(破娑王系)는 뒤에 영해(寧海),면천(眄川),강릉(江陵),해주(海州),비안(比安),이산(尼山),구진(邱津),계림(鷄林),노성(魯城)으로 분적(分籍)되었다. 일성왕계(逸聖王系)는 시조왕 5세 아달라왕(阿達羅王)에서 28세 신덕왕(神德王)에 이어진후 29세 이르러 경명왕계(景明王系)와 경명왕 동생 경애왕계(景哀王系)로 갈라졌으며 이중 밀성박씨는 경명왕계에 속한다.

시조왕29세손이요 신라 54대왕인 경명왕(景明王)은 9명의 왕자를 두셨다. 이 9명의 왕자들로부터 계보가 다양하게 갈라져 나가는데 그중 첫 왕자 휘(諱) 언침(彦 )을 밀성군(密城君)에 봉(封)하였음으로 그분을 밀성대군이라 부르며 그 후손을 밀성대군 언침파라고 칭한다.

 

밀성(밀양)박씨는 바로 밀성대군에서 시작되며,   밀성대군 8세인 언부, 언상, 언인 대에 이르러 후손이 크게 번창했으며 화려하리 만큼 현저하다. 

위 3언 중 휘(諱)언상(彦祥)은 도평의사공파(都評議事公派)의 중시조(中始祖)이다. 고려 문종(1046丙戌-1082壬戌)때 도평의사(都評議事)를 지내고 밀직군(密直君)에 봉군(封君)되었다. 언상의 2세 양신(良臣)은 소감(少監)을 하였고 3세 직(直)은 감무(監務)를 하였다.

직(直)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도평의사공 4세 인경(仁卿), 의경(義卿), 신경(信卿)이다.

인경은 문림랑(文林郞), 의경은 창승(倉丞), 신경은 소감(少監)을 하였다.

인경의 자(子)인 5세 검(儉)은 내부시승(內部侍丞), 6세 열(說)은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까지 올라 문정(文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7세 창밀(昌密)은 현승(縣丞), 8세 거인(居仁)은 공민왕 때 소감(少監)을 하였는데, 인의현(仁義縣 :지금의 태인지방)으로 귀양하여 3대가 살았다.

9세 승봉(承奉)은 벼슬이 소윤(少尹)이었으나 고려가 망하자 형 문봉(文奉)과 함께 은둔 했으며, 승봉(承奉)은 오늘날 도평의사공 후 돈재공파의 직계가 되신다.

언상의 10세 덕명(德明)은 조선 태종3년(임오:1402)에 무을과에 등과하여 벼슬이 승의부위(承義副衛) 호익순위사(虎翼巡衛司) 우령부사정(右領副司正)에서 단종조에 절충장군 훈련원 도정(折衝將軍 訓鍊院 都正-정3품)까지 올랐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위세가 오르자 낙향 하였다.

 

 언상의 11세손 연생(衍生)은 호가 돈재(遯齋)이신데 연생(衍生)이하는 돈재공파(遯齋公派)라 한다. 수양대군이 단종 2년(1453:癸酉)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단종임금을 내몰 때 돈재공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行) 충무시위사(忠武侍衛司) 대호군(大護軍) 벼슬을 버리고 태인으로 낙향하여 부친을 모신 채, 장성 아치실로 들어간 뒤 다시 독신으로 담양 월산 사위 이석손(李碩孫)의 집에 은둔하였다. 세조가 등극(1455 : 乙亥)한 그해 12월 27일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三等)에 녹(錄)하는 교서를 내렸으나 사양하고 다시 세조4년(1458 :戊寅)에 이등(二等)으로 녹훈을 내렸으나 병든 몸이라 핑계하며, 본관을 태인(泰仁)으로 개관(改貫)하고,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다.                    top

 

<이때부터 돈재공 후손들은 공민왕 때 소감(少監)을 지낸 거인(居仁)을 1세조로 하여 태인박씨라 칭했다. 그러나 순조 32년(1831:辛卯)에 이르러 장성 유생 박규혁등이 예조(禮曹)에 상소(上疎)하여 태인박씨에서 다시 밀성박씨로 복관(複貫)하였다. 신라박씨 대종회나 밀성박씨 대종회에서는 거인(居仁)이하를 태인박씨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그간 대종회와의 소통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탓으로 돈재공파문중과 협의하여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돈재공은 시조왕 47대손이요 밀성대군 18세손이며 도평의사공 언상의 11세손이다. 이분이하 후손들은 돈재공파라 칭하며  전남 장성을 세거지로 하여 번성해 나갔다.

돈재공2세 문아(文雅)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승지겸 경연수찬관(承政院 左承旨兼 經筵修撰官)벼슬을 사후에 증직(贈職)으로 받았다.

돈재공 3세 현손(賢孫)은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吏曹參判兼 同知義禁府事)벼슬을 증직 받았고,  5형제를 두었는데

바로 ①종원(宗元), ②형종(亨宗), ③이종(李宗), ④정종(宗貞), ⑤계종(繼宗) 이며 돈재공 4세손들이다.

 

위 5형제 중  ②형종(亨宗)의 7세손이며 돈재공 10세손인 남화(南華 :1664년~1735년)께서  세거지 장성을 벗어나 남원 식정리에 입향함으로서 밀성박씨 돈재공파 일문이 남원에 뿌리를 내려 300여년을 이어왔으며,  2006년 현재 남원시 식정동에 돈재공 후손 40여호가 살고 있다.

②형종(亨宗)의 계보는  수영-토검-상윤-윤모-행재- 남화(南華)로 이어져 내려 오는데 수영-토검-상윤-윤모-행재 등 5대의 묘소는 실전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왕왕 있어왔으나, 선대의 묘소를 실전한 남원 식정동 문중의 슬픈 마음을 어찌하랴!   그러나 본손들은 1995년 5천 여 만원을 들여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 선산(先山)  옆에  영효재(永孝齋)를 건립하고 선영을 배향(配享)해 오고 있으니, 영효재(永孝齋)를 세운 남원

식정동 문중은 자라나는 후손들에 대한 뿌리교육과,  숭조사업에 있어 모범이 되는 문중이다

 

2. 돈재공파(遯齋公派) 남원시 식정동 문중 계보(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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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성박씨 돈재공파는 다시 8개파로 분류되는데 이는 종중일을 수행함에 있어 보다 조직적이고 능률적으로 목표달성을 하기 위하여 편의상 만들어 놓은 조직입니다.  

* 먼저 돈재공 4세의 형제 분들을 종원(宗元)-형종(亨宗)-이종(李宗)-정종(貞宗)-계종(繼綜) 5파로 나누고

* 인원이 많은   종원(宗元)의 후손을 수온, 수량, 수공, 수검, 등 4개파로 나누어 모두 8파를 형성한 것입니다.

이를 다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종원(宗元)----------

수온(守溫)

 

수량(守良)

 

수공(守恭)

 

수검(守儉)

형종(亨宗)

 

이종(李宗)

 

정종(貞宗)

 

계종(繼綜)

 

*이를 다시 계통도상에 자세히 구분하면 아래와 같은데 청색 글씨로 내려가는 계보가 남원 식정동 문중계보 입니다.

      01세

 

02세

 

03세

 

04세

 

05세

 

06세

 

07세

 

08세

 

09세

 

 

 

 

 

 

연생(衍生)

 

문아(文雅)

 

현손(賢孫)

 

종원(宗元)

 

수온(守溫)

 

사영(士瑛)

 

성번(成蕃)

 

 

 

 

 

 

 

 

 

 

(遯 齋 公)

 

  

 

  

 

  

 

(河南處士公)  

 

사침(士琛)

 

상겸(尙謙)

 

 

 

 

 

 

 

 

 

 

 

 

  

 

  

 

  

 

  

 

(習讀公)↑

 

상효(尙孝)

 

 

 

 

 

 

 

 

 

 

 

 

  

 

  

 

  

 

  

 

사순(士珣)

 

상의(尙義) (栢友堂)

 

 

 

 

 

 

 

 

 

 

 

 

  

 

  

 

  

 

  

 

  

 

상지(尙智) (訥軒公)

 

 

 

 

 

 

 

 

 

 

 

 

  

 

  

 

  

 

수량(守良)

 

사우(思愚)

 

상경(尙敬) (鰲山)

 

 

 

 

 

 

 

 

 

 

 

 

  

 

  

 

  

 

 (貞惠公)

 

(淸節堂)

 

상근(尙謹) (閒適堂)

 

 

 

 

 

 

 

 

 

 

 

 

  

 

  

 

  

 

  

 

  

 

성남(成男)

 

 

 

 

 

 

 

 

 

 

 

 

  

 

  

 

  

 

  

 

  

 

상남(尙男)

 

 

 

 

 

 

 

 

 

 

 

 

  

 

  

 

  

 

  

 

사노(思魯)

 

상원(尙原) (松岩)

 

 

 

 

 

 

 

 

 

 

 

 

  

 

  

 

  

 

  

 

  

 

언복(彦福) (鶴山)

 

 

 

 

 

 

 

 

 

 

 

 

  

 

  

 

  

 

  

 

전      (全)

 

인호(仁虎)

 

 

 

 

 

 

 

 

 

 

 

 

  

 

  

 

  

 

  

 

  

 

정린(廷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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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平)

 

정인(廷燐)

 

 

 

 

 

 

 

 

 

 

 

 

  

 

  

 

  

 

  

 

효남(孝男)

 

  

 

 

 

 

 

 

 

 

 

 

 

 

  

 

  

 

  

 

  

 

숙남(叔男)

 

  

 

 

 

 

 

 

 

 

 

 

 

 

  

 

  

 

  

 

(木牛堂公)

 

종남(終男)

 

  

 

 

 

 

 

 

 

 

 

 

 

 

  

 

  

 

  

 

수공(守恭)

 

사운(思雲)

 

상남(尙男)

 

 

 

 

 

 

 

 

 

 

 

 

  

 

  

 

  

 

  

 

  

 

상겸(尙兼)

 

 

 

 

 

 

 

 

 

 

 

 

  

 

  

 

  

 

(四季堂公)

 

  

 

상묵(尙默)

 

 

 

 

 

 

 

 

 

 

 

 

  

 

  

 

  

 

수검(守儉)

 

영호(永浩)

 

평옥(平玉)

 

 

 

 

 

 

 

 

 

 

 

 

  

 

  

 

형종(亨宗)

 

수영(守影)

 

토거(土居)

 

  

 

 

 

 

 

 

 

 

 

 

 

 

  

 

  

 

(秋溪公)

 

  

 

토검(土檢)

 

상례(尙禮)

 

윤보(允譜)

 

행재(行裁)

 

 

 

 

 

 

 

 

 

 

  

 

  

 

  

 

수무(守武)

 

토량(土良)

 

상호(尙昊)

 

 

 

(행재 이하

 찾아 보기)

 

 

 

 

 

 

 

 

  

 

  

 

  

 

  

 

토찬(土贊)

 

상운(尙雲)

 

 

 

 

 

 

 

 

 

 

 

 

  

 

  

 

이종(李宗)

 

수영(守英)

 

개      (漑)

 

인제(仁悌)

 

 

 

 

 

 

 

 

 

 

 

 

  

 

  

 

(盧亭公)

 

  

 

  

 

인효仁孝)

 

 

 

 

 

 

 

 

 

 

 

 

  

 

  

 

  

 

수웅(守雄)

 

운경(雲慶)

 

안국(安國)

 

 

 

 

 

 

 

 

 

 

 

 

  

 

  

 

  

 

  

 

운서(雲瑞)

 

광국(匡國)

 

 

 

 

 

 

 

 

 

 

 

 

  

 

  

 

(普軒公)

 

  

 

운상(雲祥)

 

유봉(攸奉)

 

 

 

 

 

 

 

 

 

 

 

 

  

 

  

 

정종(貞宗)

 

맹손(孟孫)

 

명길(命吉)

 

계영(桂英)

 

 

 

 

 

 

 

 

 

 

 

 

  

 

  

 

계종(繼宗)

 

효손(孝孫)

 

반좌(潘佐)

 

순경(順敬)

 

 

 

 

 

 

 

 

 

 

 

 

  

 

귀손(貴孫)

 

(野塘公)

 

  

 

  

 

 

 

 

 

 

 

 

 

 

 

 

      01세

 

02세

 

03세

 

04세

 

05세

 

06세

 

07세

 

08세

 

0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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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효재(永孝齋) 탐방(探訪)

영효재(永孝齋)는 밀성박씨 돈재공파 남원시 식정동  문중의 사우(祠宇)로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에 있다.  

남원시 도통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동쪽 장수읍 쪽으로 가다보면 88고속도로 진입로인 남원 교차로를 지나 남원소방서가 나온다. 이어서 고죽교차로와 갈치 삼거리를 지나면 밀성박씨 돈재공파 세거지인 식정동이 나오는데 계속 갈지천 하갈교를 지나 10분쯤가면 청룡사 입구 못 미처에 좌측으로 소로가 나있는데 입구에 길게 누어있는 돌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비석은 "밀성박씨 돈재공파 영효재 입구"라고 한문으로 써있다. 화살표를 따라 조금 올리가면 영효재와 선산이 보이고 좌측으로 산지기가 사는 가옥이 보인다.

 

한편 반대로 장수읍에서 남원 쪽으로 요천변 길을 다라 내려가면 목동리 입구가 나오는데 거기를 거쳐 청룡사 입구를 지나면 곧 우측으로 영효재입구를 알리는 돌비석을 만나게 된다.

밀양박씨 돈재공파 영효재 입구라 쓰인 와석(臥石) 안내에 따라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면  야산자락에 위치한 영효재 전경이 눈에 들어 온다.  top

경의문이라 쓰인 현판이 걸린 삼문이 나오고  삼문 앞에는 커다란 사자 두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경의문을 지나면 바로 영효재를 대하게 된다.

 

 

 

영효재를 안내하는 비석 (남원시 목동면 산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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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성박씨 돈재공파 영효재 입구"라고 쓴 안내 석

 

 

영효재를 출입하는 경의문 전경, 좌측은 관리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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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문이라고 현판이 써있는 삼문, 양쪽의 사자상이

    이채롭다.

 

 

경의문(敬義門)이라고 쓴 현판을 가까이서 올려 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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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효재 전경 - 우측 마당에서 바라본 모습

 

 

영효재 전경 - 우측 마당 밖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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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의 송덕비 - 용효재 앞마당 좌측에 서있음

 

 

남화지묘(南華之墓)-돈재공 10세손,

    비문은 수응지묘(守應之墓)라고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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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욱지묘(文郁之墓) - 돈재공 14세손

 

 

밀성박씨 돈재공파 남원시 식정동문중 선산 전경

(전북 남원시 산동면 목동리)

 

4. 행정구역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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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도통동(道通洞) --- 돈재공파 세거지(世居地)인 식정동(植亭洞)의 행정동임. 

 

도통동은 월락동, 고죽동, 식정동, 갈치동, 도통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다. 본래 남원의 통한면(通汗面), 갈치면(葛峙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때 통한면의 통기리(通基里), 동도리(東道里) 일부와 갈치면의 월천리(月泉里) 일부를 병합하여 동도와 통기의 이름을 따 도통리라 하여  남원읍에 편입하였고, 갈치면의 낙현리(洛峴里), 미동리(彌洞리), 월천리(月泉里) 일부와 통한면 동도리 일부를 병합하여 월천과 낙현의 이름을 딴 월락리와 갈치면 고산리와 황죽리를 병합한 고죽리, 그리고 갈치면의 식정리, 갈치리는 왕치면에 편입하였다가 1956년 왕치면이 폐지되어 월락리와 식정, 갈치리가 남원읍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81년 남원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리가 동으로 바뀌었다. 조선조 전라도 11개 역(驛)중에서 도통동 지역에 동도역(東道驛)이 있었고, 1940년 이곳에 남원농업고등학교가 설립됨으로써 임실, 장수, 순창, 곡성, 함양등 각 지방에서 중학교가 없는 시절 이곳은 이른바 중등교육의 중심지가 되었고 각종 초 중고등학교가 밀집되어 있다.
   농공고 뒷산이 백공산(百工山)인데 그 규모는 적으나 이 산이 남원시의 주산(主山)이므로 이 고장에서는 옛부터 백공산을 소중히 관리하였다고 한다. 백공산 근원은 보절면 천황봉(天皇峰 : 본래 이름은 만행산)인데 백공산 줄기 제일 끝자락에 선원사(禪院寺)를 세워 이를 [만행산 선원사]라 부른 것은 주산의 백공산의 지세가 허약므로 만행산의 기를 끌어아 백공산의 지세를 보완하려 했다고 한다. 남원의 주산인 백공산의 허약한 지세를 북돋우기 위한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창건된 선원사는 남원 기노회(耆老會)가 계를 조직하여 관리하였다고 한다. 마을복판의 창주서원(滄州書院)은 옥계(玉溪), 노진(盧진)을 배양하였다.


 

남원시 산동면(山東面) --- 밀성박씨 돈재공파 영효재가 있는 목동리를 관할함.

 

산동방(山東坊)과 목동방(木洞坊) 등 2개 방이 있었던 지역으로 효종(孝宗) 5년(1654) 산동방에서 번암이 장수로 분리되었다. 1897년(고종 34년)에 8도를 13개 도(道)로 개편하면서 방(坊)이 면(面)으로 바뀌었고, 산동면이 중심이 되었다.
1910년 목동방이 산동방에 병합되어 천황산(만행산) 동쪽에 위치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산동면(山東面)이라 하고 목동(木洞), 식련(植蓮), 이곡(梨谷), 태평(太平), 신풍(新豊), 대촌(大村), 부곡(釜谷), 중절(中節), 등구(登九), 선촌(仙村), 신기(新基), 대치(大峙), 상점(上店), 석동(席洞), 월산(月山) 등 15개 리(里)를 관할 하였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통폐합때 목동(木洞), 식련(植蓮), 태평(太平), 부절(釜節), 대기(大基), 대상(大上), 월석(月席) 등 7개 리(里)로 개편하고 면사무소를 부절리(釜節里)에 두었다가 1924년 면사무소를 태평리(太平里)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른다. 1995년 1월 1일 남원시 군이 통합되어 남원시 산동면으로 되어 현재는 7개 법정리, 15개 행정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1. 지리적 위치

 남원시에서 동북쪽으로 15km지점인 동경 127도 28분 북위 28도 9분에 위치 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장수군 번암면, 남쪽으로는 운봉읍 및 이백면, 북쪽으로는 보절면이 인접하고 있다. 국도 19호선(남해∼원주)이 동서쪽으로 관통하고 있고 88고속도로가 일부 마을을 지나고 있다.


2. 면세(면 적)

 1997년 6월말 현재 산동면의 전체면적은 5,049ha로 남원시 전체면적의 7.4%를 차지하며, 전답별 비율은 답 553.8ha로 농경지의 80.7%이며, 전은 132.3ha로 농경지의 19.2%이다. 임야는 4,363ha로 산동면 전체의 86%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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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형

 ○ 일반적 지세 -  소백산맥의 한 줄기가 동쪽으로 솟아 대성산(大成山)이 되고, 북쪽으로 높이 솟아 천황봉(天皇蜂)을 이룩하였다.

     남쪽으로는 고남산(高南山)이 자리잡고 있다.

 ○ 하     천

   장수군(長水郡) 수분령부터 흘러내리는 섬진강 상류인 요천수가 면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다.
 
 ○ 산림형태

  총면적의 86%를 차지하고 있는 산에는 소나무 숲으로 덮여 있으며, 임야의 인공 조림지역 산림정책에 힘입어 사방공사가 잘되어 있다.

  한편 유실 수 가꾸기에 힘써 감, 밤 등 유실수를 마을주변의 산에 조성(임야 총면적의 5%정도)하여 주민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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