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씨(房氏)의 유래와 본관

 1> 시조 :  방계홍[房季弘]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남양(南陽)은 지금의 경기도 수원과 화성군 일원을 포함한  지역의 옛지명으로
     고구려 때의
당성군인데 신라 경덕왕이 당은군으로 개칭하였고, 1310년에 남양부가 되었다.
     조선 말기에
남양군이 되어  인천부 관할이 되었다가 그땅을나누어 영흥면, 대부면은 부평군에
     편입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수원군에 합하였다.
 
     방씨는 중국 청하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요(堯)임금의 아들 단주(丹朱)가 방후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지명을 성으로 삼게 되었다고하며, 우리나라 방씨는  당나라 양공
방현령(房玄齡)
     634년 고구려의 주청(奏請)으로 동래하여 남양에 사적(賜籍)한 것이 시초가 된다.

     그후 상계가 실전되어 후손들은  고려조에서 삼한벽상공신으로 삼중대광보국공에 오른
     
방계홍(房季弘)을 1세조로 하고 선조의  사적지인 남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어왔다.
    
     방씨의 관향은 남양을  비롯하여 수원(水原), 남원(南原), 온양(溫陽), 밀양(密陽), 양산(梁山)등
     23본까지 문헌에 전해지나 모두가 남양방씨의 세거지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원방씨(水原房氏)의 시조로 전하는 방정유(房貞儒:일명 지유)는 남양방씨의 1세조 방계홍의
     손자임이 밝혀졌다.

     남양 방씨의 인물로는 계홍의 아들 의강(儀康)이 고려때 평장사를 지냈으며,   
     손자
진유(珍儒)는 추밀원 부사를 거쳐 예부상서를 지냈다. 한편 상호군 주(柱)의 아들
     
사량(士良)은 공양왕때 직제학을 거쳐 전의시승을 지냈고, 그의아들 3형제중 장남 구행(九行)
     군자감정을, 차남
구달(九達)은 군자감 부정을 역임하여 대를이어 가세를 일으켰고,
     사량의 증손
귀원(貴元:봉교를 지냄)과 옥정(玉精:세자시강원 문학)이 유명했다.

     특히 계문(戒文)의 아들 귀온(貴溫)은 중종조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참봉과 사간원의 정언이  
     되었으나 기묘사화로 스승이 사사(賜死)되자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만 진력했으며,
     
응현(應賢)은 선조때 농사를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실학자로 명망이 높았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방씨(房氏)는 남한에 총 5,371가구,
     22,51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http://burimhong.pe.kr/name2/116%20nam%20yang%20bang.htm남양방씨 인터넷>

 

방귀온(房貴溫)
1465(세조 1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옥여(玉汝), 호는 금서(錦西). 사정(司正) 계문(戒文)의 아들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1495년(연산군 1) 진사가 되고, 1517년(중종 12) 전라도관찰사 조원기(趙元紀)로부터 부모상례를 잘 치르고 항시 마음을 돈독히 하며 바른 일에 철저하여, 효행이 지극한 자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다.
1519년 사간원정언으로 되었다가 같은해 기묘사화로 유배되었다.
1538년 이조판서 윤인경(尹仁鏡)의 상소로 인하여 신원되었다

 

방귀원(房貴元)
?∼1469(예종 1).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직제학 사량(士良)의 증손이며, 판관 순문(恂文)의 아들이다.
1465년(세조 11) 진사가 되고, 같은해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69년(예종 1)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가 되었으며, 문학(文學)이 있었으나 일찍 죽었다

 

방응현(房應賢)
1523(중종 18)∼1589(선조 22).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준부(俊夫), 호는 사계(沙溪).
남원출신으로 좌랑 귀달(貴達)의 손자이며, 한걸(漢傑)의 아들이다. 일찍이 조식(曺植)·이항(李恒)의 문하에 출입하며 학문을 닦았으나 관직에 뜻이 없어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향리의 사계천(沙溪川)위에 집을 짓고 일생을 송시(誦詩)와 독서로 자적(自適)하는 가운데 과농(課農)·이포(理圃)·관개(灌漑)·화죽(花竹) 등 농학분야의 생리문제(生理問題)에 관심을 두었으며, 동향의 임란의병장 변사정(邊士貞)과 친교가 두터웠다.

 

 3> 집성촌

전북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남양면 일원남양방씨 고창군 입향조 방성록(房聖祿)은 중시조(中始祖) 방사량(房士良)의 8대손이자 파조(派祖) 한림공(翰林公) 방구행(房九行)의 7대손으로 1571년(선조 4)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南陽面)에서 태어났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전투에 참가하여 고부·정읍·법성포까지 출진하는 길에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를 지나다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풍치에 심취하여 정착하였다.

     2009년 현재 방성록의 후손들이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를 비롯하여 심원면, 아산면, 대산면 등지에 살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고창군에 살고 있는 남양방씨는 총 47가구에 112명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양방씨 [南陽房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경기도 수원시 일원, 화성군 남양면 일원

전북 남원군 주생면 지당리, 영천리

전북 남원군 금지면 입암리, 대강면 일원

전북 정읍근 내장면 용산리

전남 담양군 대전면 병풍리

전남 고흥군 도양면 가야리

전남 보성군 겸백면 운림리

전남 승주군 송광면 대흥리

[항렬표]

21세

22세

23세

24세

25세

26세

27세

기(箕) 만(萬)
응(應) 교(敎)
태(泰) 봉(鳳)

수(繡) 욱(旭)
창(昌) 성(聖)
준(濬)

두(斗) 상(相)
익(翼) 채(采)

환(煥)
세(世)

규(圭)


진(鎭)


원(源)


28세

29세

30세

 

 

 

 

극(極)

혁(爀)

기(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