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o m e       

   tn_a17.gif

          

   

전통문화의 계승

     tn_a17.gif

     

       

 

 

<갈산 사문중 선산에서 아늑했던 할머니의 품을 그리다>

여기에 소개되는 이야기의 산소와 시제 모습은 2014년 07월 05일

이전의 모습입니다.

여기에  모시는 선조들의 묘소는 갈산마을 망태동과

안터에 산재하였는데

2014년 07월 05일 상하면 석남리 산 35

대문중 선산에 이장하였습니다.

 

 

그 동안 박혁거세 신라 시조왕부터 시조왕 62세까지 갈산박씨문중 직계의 계통을 따라 유적과 묘소를 살펴보았다. 여기서부터는 시조왕 63세 이하인데 바로 필자의 사문중이다. 사문중 전체를 여기에 다 수록할 수 없음으로 필자의 직계만 서술코자한다.

 

①종용지묘(宗容之墓)       ②균업지묘(均業之墓)

 

위 두 분은 서로 부자간이시다. 휘(諱) 종용(宗容)께서는 시조왕 63세 손이며 휘(諱) 균업(均業)께서는 시조왕 64세 손이다. 갈산 안터 언덕에 모셔져 있다.

 

▲ 사문중 선산요도

 

종용지묘

(시조왕63세)

균업지묘

(시조왕64세)

철구지묘

(시조왕65세)

 

두 분의 묘소 바로 곁에 모셔진 휘(諱) 만필(萬弼-도면⑦번) 공(公)은 종용(宗容)의 아버지이시고 균업(均業) 공(公)의 할아버지이시다. 균업(均業) 공(公)은 나의 고조(高祖) 이시므로 서울에서 내가 방 제사를 모신다. 종용(宗容) 공(公)은 사문중에서 매년 4월 5일 대문중 시제와 더불어 묘제를 모신다. 대문중 시제 때 모이는 문중원의 대다수는 종용(宗容) 공(公)의 후손이다. 묘제 유사는 갈산에 대를 이어 거주하고 계신 박용섭과 박오섭 당숙인데 항상 고생이 많다. 종용(宗容) 공(公)에 대한 묘제가 끝나면 제상을 균업 공의 묘 앞에 옮겨놓고 재배를 올린다. 그리고 나서 후손들이 음복을 한다.

 

         

        ▲ 宗 容 之 墓 (종용지묘:오른쪽)-시조왕63세손

            밀성대군 34세.도평의사공 27세손.돈재공17세

        ▲ 均 業 之 墓 (균업지묘:왼쪽)-시조왕64세손

            밀성대군 35세.도평의사공 28세손.돈재공18세

            (전북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 갈산부락 안터)

 

종용지묘와 균업지묘에 시제를 지내고 음복하는 일가들

 

         

        宗 容 之 墓 (종용지묘)  시제모습 1980년대말

         

 

 

사진은 1980년대 말 전북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 갈산부락 안터 선산에서 시제를 지내는 모습입니다. 오래동안 잊혔던 사진을 2005년 11월 26일 발견하여 올렸습니다.



종용지묘(宗容之墓)와 균업지묘(均業之墓)에 시제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진설하는 모습

종용지묘(宗容之墓) - 신라시조왕 63세, 밀성대군 34세, 돈재공 17세

균업지묘(均業之墓) - 신라시조왕 64세, 밀성대군 35세, 돈재공 18세

(좌에서 4번째가 필자)



1980년대 말 갈산마을 안터 만엽지묘(萬燁之墓)와 만필지묘(萬弼之墓)앞에 앉은 필자.

만엽지묘(萬燁之墓) - 신라시조왕 62세, 밀성대군 33세, 돈재공 16세

만필지묘(萬弼之墓) - 신라시조왕 62세, 밀성대군 33세, 돈재공 16세
 


갈산마을 안터선 산산에서 시제지내는 필자.



 


박학래 께서 종용지묘(宗容之墓)에 배례를 드리고 있는 보습 

박학래 - 신라시조왕 66세, 밀성대군 37세, 돈재공 20세<학래께서는 1990년대 초 작고하셨음>



박학래께서 시제 후 일가들과 함께 음복하시는 모습 



박학래께서 시제 후 일가들과 함께 음복하시는 모습 

<여기는 나이가 높은 일가들이고 젊은 일가들은 따로 음복 한다>


 

박학래 께서 종용지묘(宗容之墓)에 배례를 드리고 있는 보습 

박학래 - 신라시조왕 66세, 밀성대군 37세, 돈재공 20세<학래께서는 1990년대 초 작고하셨음>

 

 


박학래께서 축관(필자)의 축문 읽는 모습을 내려보고 계심.



박학래께서 우집사의 집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심.

이 당시 시제에 참여한 일가들이 시제 중 방심하는 기색이 보이면

학래께서는 "이놈! 너 뭐하는 놈이냐?"하면서 불같이 화를 내셨다.  

 


 

시제 후 음복을 하는 일가 모습.

 


시제 후 박학래 어른을 모시고 음복하는 갈산문중들. 

 

 

 ③철구지묘(哲求之墓)  

 

공(公)은 필자의 증조부이시다. 갈산 뒤 망태동 선산에 4분의 아들들과 함께 모셔져 있다. 장자 휘(諱) 래호(來昊) 공(公)은 필자의 조부가 되신다.

 

 ③  철구지묘(哲求之墓)



④ 래호지묘(來昊之墓)



    ⼗시조왕 65세



④ 래필지묘(來弼之墓)



    ⼗밀성대군 36세



④ 래흡지묘(來洽之墓)



    ⼗도평의사공 29세



④ 래춘지묘(來春之墓)



 

 

        ▲ 哲 求 之 墓 (철구지묘) -시조왕65세손

            밀성대군 36세.도평의사공 29세손.돈재공19세손

            (전북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 갈산부락 뒤 망태동)

 

증조부께서는 만년에 마을 훈장을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증조부님으로부터 한문을 배웠다. 증조부님이 거처하는 글방에는 학동들이 가득했고 글 읽는 소리가 격조 높게 들리곤 하였다.

 

④ 래호지묘(來昊之墓)

 

 

 ▲ 來 昊 之 墓 (래호지묘) -시조왕66세손

        밀성대군 37세.도평의사공 30세손.돈재공20세

        (전북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 갈산부락 뒤 망태동)

 

공(公)은 나의 조부이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유별나게 필자를 귀여워하였다. 나이 50이 넘어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 조부모의 아늑한 손길이 그리울 뿐이다. 망태동 선산에서 천룡의 소나무를 바라보노라면 어릴 때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망태동 밭에서 밭일하던 일 또한 그립다.

할아버지 묘는 증조할아버지 묘 아래 형제분들과 함께 나란히 모셔져있다. 얼마 전 증조할아버지 후손들이 경비를 들여 묘역을 새롭게 단장했는데 후일 고증자료로 하기 위해 그 내역을 요약하여 기록하고자한다. 이 일을 하는데 고창 작은아버지 (朴金洙)께서 노고가 많으셨다.

 

    <휘(諱) 철구(哲求) 공(公) 묘역 단장 내용>

    ⼔ 위 치 : 갈산 뒤 망태동(망태골) 선산

    ⼔ 일 시 : 2001년. 6월 1일 ∼6월 2일(토)

    ⼔ 정비내역 : 휘(諱) 철구(哲求)이하 산소 10기 이장(모두 합장하였음)

    ·증조부

    -諱, 哲求(중앙에 모심). 配, 海州崔氏(증조부님 왼쪽 합장)

                                       配, 慶州崔氏(증조부님 오른쪽 합장)

    *묘 앞에 상석을 놓고 자손을 기록 함

    (묘문→ 愚溪 密陽朴公 哲求之墓 配 海州崔氏 配 慶州崔氏)

    ·조 부

    -諱, 來昊.   配,   驪興閔氏(조부님 왼쪽 합장)

    -諱,  來弼.  配,   光山金氏(조부님 왼쪽 합장)

    -諱,  來洽.  配 ,  密陽孫氏(조부님 왼쪽 합장)

    -諱,  來春.

    *묘 앞에 각각 상석을 놓지 않고 중앙에 위 네 분을 일괄 하여

      모시는 상석을 놓음(묘문→ 密陽朴氏遯齊公派祭壇)

    *각 묘 측면에 휘(諱)와 배(配) 및 자손을 밝히는 표석을 세움

    ·숙 부 -諱, 三燮.

    *묘 측면에 휘(諱)와 자손을 를 밝히는 표석을 세움

 

갈산 망태동 선산 요도

 

 

            ▲ 추석성묘

휘(諱) 철구(哲求) 공(公) 후손들이 추석성묘를 하고 있음. 좌로부터 래호지묘(來昊之墓) 래필지묘(來弼之墓) 래흡지묘(來洽之墓) 래춘지묘(來春之墓) 위 형제분들은 제 단이 하나임

 

 ▲망태동 선산에서 바라본 갈산부락 뒤 천룡

 

뒷줄-좌에서 우로 來春之墓( 래춘지묘) 來洽之墓(래흡지묘) 來弼之墓( 래필지묘 ) 來昊之墓 (래호지묘 )

                                                    

 맨 앞                                 哲求之墓(철구지묘)

         

 

 

 ⑤영섭지묘(英燮之墓)  

 

이 분은 필자의 부친이며 신라 시조왕 67세손이시다. 2001년 11월에 서울에서 향년 74세로 돌아가셨다. 원래 아버지를 선산에 모셔야 하나 고향에는 시신이 탈골하지 않으면 선산에 못 들어가는 풍습이 있어 이에 따라 아버님을 고창군 아산면사무소에서 관리하는 장묘장에 당분간 모시게 되었다. 고창읍에서 무장 쪽으로 가다보면 아산면에 이르러 우측으로 양지바른 장묘장이 보이는데 우측 중간쯤에 모셨다.

 

     

 

            ▲英燮之墓(영섭지묘)-시조왕67세손

            밀성대군 38세.도평의사공 31세손.돈재공21세

            (전북 고창군 아산면 장묘장 우측 중간)

 나는 증산도 신앙을 함으로 아버지를 증산도에 귀의 하시도록 천도식을 해드렸다. 다음은 아버지와 증산상제님에 대한 천도해원 발원문이다.

 

아버님 해원천도 발원문

아버님 !

아버님 돌아가신 후 하루라도 빨리 천지인 삼계대권의 주제자이신 상제님의 대경대법한 도의 세계로 천도하여 드려 하였으나 그간 경황이 없어 오늘에야 증산도 봉천도장에서 천도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해원 천도 일을 맞아 유명지간에 아버님을 뵈오니 만감이 교차하나 무슨 말씀으로 아버님께 위로를 드려야 할지 그저 아득할 뿐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애석하게도 초로(初老)에 득병(得病)하신 이래 그것이 16년이라는 세월동안 종신지통이 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갖은고생을 하시다가 결국 영면하시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몸져누우신 아버님을 자식된 도리로서 성심성의 껏 돌보아드리지 못하고

 

 

▲아산면 장묘장

끝내는 참담한 모습으로 쓸쓸하게 돌아가시게 하였으니 그 죄가 큽니다. 이제 와서 후회하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못난 자식은 그저 아버님의 용서를 빌 뿐입니다.

아버님에 대한 아쉬움과 죄스러움을 가슴에 새겨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 가정에서는 홀로되신 어머님께 효성을 다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이들을 잘 길러 가문을 중흥하고 조상님들께 진심으로 봉사하겠습니다.

도장에서는 상제님 신앙을 새롭게 하는 가운데 신도들과 항상 화목하게 지내며 상제님의 진리를 전파하는데 힘쓰겠습니다.

직장에서는 상사를 잘 받들며 동료와 우애하고 부하를 사랑하는 가운데 저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버님!

이제 아버님을 증산도 도문으로 해원천도 하오니 증산도 진리에 귀의하시어 세속의 아쉬움과 한을 모두 씻으시고 증산상제님께서 질정하신 신천지 대 광명의 세계에서 심령을 안정케 하시옵소서.

 

천지질서를 새롭게 짜신 상제님이시여, 억조창생의 생명의 어머니이신 태모님이시여, 불민하고 못난 저와 아버님을 불상히 여기시고 선영과 후손이 새 운수의 길로 접어들어 후천오만년 지상선경건설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기원 드리오니 가납하여 주시옵소서.

2001년(도기 131년) 음역 11월 9일

불초(不肖) 박귀식

 

▲상하면 지도

     

▲필자의 생가(지금은 철거되고 텃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