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사(聖母祠) 탐방기

 

 

선도산 성모사(仙道山 聖母祠) 탐방기

 

2005년 4월 4일 08시 경주에서 하루 밤을 묵었던 모텔에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면을 하고 선도산을 향해 자동차를 몰았다. 천년 고도 경주 서쪽에 있는 산인데 해발 381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나 오악산왕(五嶽山王)의 응감을 위해 신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 서악(西嶽)의 지위에 있었고 여러 신이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 성모사

서악 주봉의 큰 바위 아래 마애삼존불이 있고 사소(娑蘇)라는 별명을 지닌 성모(聖母)를 배향하는 성모사(聖母祠)가 있는 산이기도 하다. 성모사(聖母祠)는 우리 갈산문중 세보에도 나오는데 성모(聖母)는 바로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의 어머님 이시다. 그래서 박씨 시조인 박혁거세의 어머니를 모신 사당 성모사(聖母祠)를 찾아 참배하러 간 것이다.

선도산을 감싸는 동부 도로를 자동차로 달리며 어느 길을 택하여 성모사에 오를까 망설이다가 경주대학교 앞에서 여학생들에게 길을 물었다. 학생 하나가 선도산 오르는 길은 여럿이 있다면서 한 곳을 안내해 주어 찾아가니 선도산 서편에 있는 외외마을 이었다.

그리로 차를 몰고 가 마을 어귀에 주차를 한 후 소를 치는 농부에게 길을 물어 오솔길을 타고 해발 381m가 되는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천천히 쉬어가면서 1시간 넘게 올라갔다. 산에는 바야흐로 봄풀이 돋아나고 나뭇가지는 파릇파릇 새싹이 완연했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가 숨이차면 풍상에 쓰러진 나무나 너럭바위에 앉아 숲속을 스치는 바람결에 이마의 땀을 식혔다. 신선한 숲 속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조그마한 능선길을 외로히 올라가는데 선도산과 선도성모(仙道聖母)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이 추억처럼 다가왔다.

성모(聖母)가 선도산(仙挑山-신선세계)에서 양산 (陽山)의 나정에 내려와 시조 왕을 탄강 하실 때 신이 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있어 고허촌장 소벌공(高墟村長 蘇伐公)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있었다. 이상 히 여겨 가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 같기도 하고 박 같기도 한 것이 있어 이를 갈라보니 그 속에 어린아이가 있었다는데 참으로 꿈같은 이야기다.

마치 성모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과 같은데 시조왕이나 예수님은 속세의 아버지가 없다. 생물학적으로 말이 않되는 이야기다. 허지만 우리는 논리를 초월하여 막연한 우주정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김부식이 송나라 우신관(佑神館)에서 왕보라는 사람으로부터 얻어 들었는데 중국 황제의 딸이 바다 건너 해동 진한에 들어가 아들을 낳아 그가 바로 해동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 후 공주는 선도산에서 신선이 되었고  우신관에 있는 여선상(女仙像)이 바로 그 신상이라고 했다는 것인데 그 이야기 또한 봄날의 먼 아지랑이 처럼 여겨진다.

중 일연이 기록하기를 '어떤 사람은 서술성모(西述聖母)가 혁거세를 낳았다' 고 했는데 서술성모는 곧 선도성모이며 선도산이 바로 서술산이다. 또한 김부식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국의 공주 사소(娑蘇)가 동방으로 와서 성자(聖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박혁거세라는 것이다. 뭔가 막연한 모화사상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전설에 의하면 성모는 신라 26대 진평왕 무렵 돌연 지혜라는 비구니의 꿈에 나타났다. 그때 지혜는 안흥사 불당을 수리하다가 돈이 모자라 중단하고 있었다. “나는 선도산 신모인데 네가 불당을 수리하려는 것이 기뻐 금 열 근을 시주하려고 한다. 내 자리 밑에서 금을 꺼내 써라.” 고 하는 신모의 현몽에 깜짝 놀랐다. 지혜는 무리를 이끌고 성모를 모신 신사(神祠)로 가서 성모의 상 밑을 파니 황금 160냥이 있어 이것을 캐어 목적을 달성 했다는 것이다.

54대 경명왕이 사냥을 나가 선도산에서 매를 날렸는데 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신모에게 매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이 사당에 봉작을 하겠다고 빌었더니 과연 오래지 않아 매가 돌아와 탁자에 앉았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후손 언수가 시조왕의 위패를 모시고 성모사에 피란 하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성모사는 신이(神異)한 전설과 오랜 역사를 가진 사당이 아닌가 싶다.

김유신의 여동생 보희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선도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는데 그 오줌이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 신라의 서울 서라벌을 삼켜 버리는 것이었다. 그 꿈을 기이하게 여겨 여동생 문희에게 이야기 했다. 꿈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언니 보희에게 꿈을 팔라고 하여 꿈을 샀다.

그리하여 보희는 나중에 태종무열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또한 해질녁의 아련한 수평선 처럼 느껴진다.

이런생각 저런생각에 젖어 산 정상 바로 아래 평지에 다다르니 사진으로만 보던 성모사가 나타났다. 단청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아담하고도 아름다워 보였다.  성모사에서는 경주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일망무제한 동남쪽 풍경은 봄기운에 젖어들어 꿈을 꾸는성 싶었다.

산모퉁이를 돌아드는 바람결에 땀을 식히고 성모사를 한 바퀴 돌아 봤다. 그리고 문앞에 다가가 경건한 마음으로 읍배를 하였다. 신선의 경지에 계신 성모님께 나 또한 수행을 하여 우주의 한 소식을 듣고 싶다고 기원도 하였다.

성모사 앞에 세워진 비석을 보니 성모사는 신라 때 창건되어 향사를 해왔는데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1974년- 1975년에 성모사를 새로 건립하고 신라기원 2033년(1976년)년에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성모사 옆에는 마애석불상이 서있는데 미륵부처다. 천연의 암석에 조각한 웅장한 마애삼존불상으로 보물 62호이며 1963.1.21. 대한민국에서 지정하였고 경주 서악리(西岳里)에 있다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불상은 통일신라 초기 작품이라고 추정되는 모양인데 가운데 주불은 크게 파손되어 있었다. 불상과 성모사를 보니 신교정신을 물씬 풍기는 성모께서 불교와 잘 조화하고 계신 것같았다.

성모사 바로 동쪽에는 재단법인 도덕회수성원(道德會修性院) 건물이 있고 또 그 옆으로 산신령을 모신 산령각(山靈閣)이 있었다. 이 곳에도 도교와 불교가 자연스럽게 접목되었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사에서 다시 내려다보니 역시 경주시내가 시원스럽게 보이고 공기 또한 신선하여 별천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

성모사 경내를 벗어나 잠시 후 선도산 정상에 오르니 3개의 커다란 돌  무더기가 나란히 서있는데 마치 마이산 탑사에 있는 돌탑처럼 생겼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돌탑 쌓기를 좋아하는데 그만큼 천지에 공들이는 마음이 다분한 것이다. 이윽고 다시 성모사로 내려오니 성모사 옆 건물에 거주하는 할머니 한분이 마애석불상 근처에서 봄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그 곳에 사는 것이 편안하냐고 물었더니 물도 맑고 공기도 맑아 건강하고 편하다고 하였다. 자동차의 물결로 탁한 공기 속에서 숨막힐 듯 사는 나의 처지를 생각하니 자연을 벗삼아 욕심 없이 청정하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할머니 곁에 안동권씨 도생회(道生華) 송덕비가 있는데 단기 4298년 을사. 11월 30일 선도산 수성원仙道山(修性院 道親一同)이라고 써있다. 돌로 만든 거북이 입에서 나오는 선도산 약수를 한 양동이 퍼서 마시니 오장이 시원하고 깊게 씻어지는 기분이었다.

성모사를 향해 작별 심고를 드리고 할머니께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드린 후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오를 때는 선도산 서북쪽으로 올랐으나 내려 올 때는 남서쪽 선도동으로 내려 오면서 진지왕, 진흥왕, 문성왕, 헌안왕릉을 살펴보고 평지에 다다르니 삼국통일의 주역 태종무열왕의 릉이 나왔다. 그능을 돌아 본 후  콜택시를 타고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외외마을로 갔다.  

 

             꽃밭의 독백(獨白)

            - 사소(娑蘇) 단장(斷章)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 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미당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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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마애석불상에 대한 공식 안내문을 게재한다.

                     경주서악리 마애석불상(慶州西岳里磨崖石佛像)

                     보물 제62호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산 92-1

신라 사람들은 경주의 서족인 선도산(仙道山) 정산부근을 서방정토(西方淨土)로 생각하고 이곳에 아미타 삼존불(阿彌陀 三尊佛)을 새겼다.

조각하기 힘든 암석에 높이 6.85m나 되는 거구의 여래입상(如來立像)을 돋을새김 하였다. 아미타여래 입상을 본존으로 하여 왼쪽에는 불상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든 관세음보살상(관세음보살상)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大勢至菩薩像)이 있는데 이 두 보살상은 옮겨온 화강석으로 다듬어진 것이다.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 준다는 대세지보살은 얼굴과 손 모양만 다를 뿐 관세음보살상과 동일하다.

조각 솜씨로 보아 7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