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집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제 심장이 강심장이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찾아오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국수 한 그릇으로, 밥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전부인 제 자신의 한심한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에 조금의 여유라도 생기면 단칸방이나마 얻어서 우리 VIP 손님이 노숙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지난 번에는 어느 신부님께서 보증금을 마련해주셔서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또 무상으로 집 한 채를 빌려주신 고마운 분이 계셔서 방이 세 개나 있는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는 세 분이 오손도손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칸 한 칸 늘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열 분이나 됩니다. 지난 3년 동안 몇 분은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했고요. 또 몇 분은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 중에는 부부가 있습니다. 진원 씨와 춘자 씨입니다. 진원 씨도 약간 정신 지체고, 춘자 씨는 정신지체 1급입니다. 그래서 다른 노숙자들에게도 구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간섭이 없는 자유공원의 계단 밑에서 추운 겨울을 지냈습니다.

지난 해 추석에 방 한칸과 부엌이 딸린 집을 겨우 마련해는데 방이 너무 크다면서 하룻밤도 지내보지 않고 다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겨울이 깊은 올 정월에야 겨우 부부 마음에 흡족한 조그만 집을 독채로 얻었습니다. 겨우 다섯 평인 조그만 독채입니다. 찬바람 몰아치는 추운 자유공원 계단 밑에서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민들레 식구인 주헌 씨를 찾으러 동인천역에 나갔는데 술에 취해 있는 주헌 씨를 겨우 달래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춘자 씨를 만났습니다. 춘자 씨는 자유공원에서 생수를 받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춘자 씨, 무엇이 제일 드시고 싶어요?"
"덴뿌라요."

덴뿌라라고 해서 어묵을 말하는 줄 모르고 튀김을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파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슈퍼마켓에 가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춘자 씨가 말하는 덴뿌라를 사러 갔습니다. 춘자 씨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제 발걸음으로 따라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슈퍼마켓에 온 김에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전부 사라고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바구니를 들고 춘자 씨가 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담았습니다. 어묵 4개, 요구르트 3줄, 초콜릿 2개, 목캔디 1통, 비스켓 3개, 김 2개, 라면 10개를 사곤 충분하다고 합니다. 겨우 24,500원이 나왔습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게에 가서 맘껏 사라고 하면 과자 몇 개 들고 기뻐하는 것과 똑 같은 모습의 춘자 씨입니다.


춘자 씨를 만난 날 저녁 여섯 시에는 옥련동 민들레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봉렬 씨가 동태찌게를 좋아하기에 동네 조그만 식당에서 맛있게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돼지고기 두 근을 사고, 담배 세 갑도 사고, 선호 씨와 기성 씨가 좋아하는 과자도 듬뿍 사서 선물했습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의 선호 씨는 부산 소년의 집 출신입니다. 그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합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돈을 벌어야만 사람대접을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을 못했습니다. 고아원을 나와서 자취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집세를 내지 못해서 쫓겨났습니다. 추운 겨울 너무도 추워서 죽을 뻔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겨울에 밤새 떨다가 아침 햇살이 어찌나 따뜻한지 놀랬다고 합니다.


옥련동 민들레의 집의 봉렬 씨는 인천 만석동이 고향입니다. 막노동을 하면서 결혼도 했습니다.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몇 년 전 어느날 갑자기 막노동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그때부터 손목이 비틀리고 마비증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고 돈이 없어서 퇴원했습니다. 함께 살던 부인과도 헤어졌습니다. 결국은 길바닥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유공원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너무 추운 날에는 병원 로비에서 추위를 피하기도 하고, 빈 집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되기 며칠 전에는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잔 때문인지 감기 몸살로 식사도 제대로 하질 못했습니다. 노숙을 할 때 봉렬 씨는 민들레국수집에 하루에 한 번만 왔습니다. 동태국을 제일 좋아해서 민들레국수집에서 동태국이 나온 날에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 또 한 번 더 온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 옥련동에 민들레 식구들이 들어가던 날 생활에 필요한 쌀과 라면, 몇 가지 밑반찬과 냄비 그리고 수건과 치솔과 치약을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새이불도 두 채 가져갔습니다. 봉렬 씨는 새이불에 자보는 것이 처음이라며 이렇게 푹신푹신하다니 감탄하면서 아이같이 좋아합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은 삶의 상처가 깊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몫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립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기다려주면 조금씩 스스로 변합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가 훌쩍 떠나가더라도 힘들고 외로울 때는 언제든지 몇 번이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고향집같은 곳이 되도록 기다려 줄 것입니다. 사람은 서서히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에서 발행하는 "땅끝까지" 잡지 33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