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은 아름다워라 - 마지막 시간

 

<윤용수의 에세이>

그렇다.
황혼은 아름다워야 한다.
하늘이 점지해준 당신, 저승사자가 데려갈 때까지 아름다워야 한다.
황혼은 떨이를 외치는 파장이 아니라, 그 옛날 가물거리는 새끼손가락 사랑의 기억 속에 열매 맺은 붉은 과일이다.
우리들의 진화는 끝나지 않았고, 과학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닌가.
삶의 거친 에너지가 야생화로 피어나는 황혼, 은빛모래위로 금빛낙조가 황홀하게 열정을 불태우는 황혼.
황혼이 아름다워야 할 이유 중의 하나가 이승과의 이별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라면 너무 슬픈 것일까.
장엄하게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일몰이 아름다운 것도 이별 때문이 아니더냐.
강물의 끝은 고요하며, 바람의 끝은 잠잠하다.
불필요한 것은 탐욕이니 욕심이라는 분모를 작게 하여 낮은 공명음으로 살아온 세월의 노란 수채화.
그 흔한 혁명도 반란도 파업도 머리띠도 한번 없이 질곡의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 원망도 추억이 되고 미움도 사랑이 되어버린 황혼이여.
희망과 절망이 7월의 장맛비처럼 갈팡질팡 거리고 변두리의 낯선 바람조차 시퍼런 멍에가 되어 등짝을 두들겨도 하나 된 인연의 황혼은 진정 축복이어라.
홀로서기의 가장 우아한 포즈, 자유선언의 가장 멋진 독립의 포즈. 그것이 황혼이어라.
포궁에서 벗어나고, 품안에서 벗어나고, 조직에서 벗어나고,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炎凉의 德으로 삶의 慈悲로 최고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클라이막스가 황혼이다.
있고 없고, 잘나고 못나고가 다 그기에서 그기인 것이 삶의 끝이요, 생의 종착이다. 우리가 유심히만 본다면 황혼의 색깔은 주고 가고, 버리고 갈 베풂의 색깔이요, 용서하고 배려하는 미소의 색깔이다.
곡절과 사연들이 경험과 연륜으로 초탈의 지혜가 되는 황혼, 나는 그 황혼을 사랑한다.
경상도의 일광도사도 전라도의 월광도사도 오는 백발을 막지 못하니 황혼을 사랑하라 하질 않던가.
보리밭의 정사도 사라지고 울타리도 없는 하이브리드 시대이지만 우리가 외친 삶의 슬로건은 사랑이었다.
배운 것도 없어 사마광의 격옹구아(擊甕救兒)같은 지혜는 없지만, 우리가 걸어 놓은 삶의 현수막은 사랑이었다. 
황혼이 오는 계절의 길목에서 눈밭을 깡총거리는 강아지처럼 나의 마음이 뛰놀고, 강호를 누비는 여포의 창날처럼 나의 입이 달싹거리는 것도 더 멋진 황혼을 위한 준비일진저.
냉탕에 몸을 담근 우동 면발의 쫄깃함으로 이제야 인생의 시원함을 아는 황혼, 가난보다도 더 무서운 게 외로움이라는 걸 가르쳐 주는 대서사시의 황혼. 
그래, 황혼이란 언행과 거취가 분명하고 주어진 삶에서의 최선을 다하는 마지막 아름다움이리라.
황혼에는 마음을 열고 빈손을 마주잡자.
황혼은 이별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니까 말이다.
머물다 간 자리가 향기롭고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니까 말이다.
그 무덥다던 올해의 여름도 끝자락이고 애인처럼 다가온 가을의 서쪽 하늘엔 황혼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고향의 손맛으로 나를 기다리는 키 작은 한 사람이 있어 나는 오늘도  황혼에 집으로 간다.
빈 묵정밭의 허허로운 가슴이라도 천년을 단심으로 기다리는 한 그루의 키 작은 주목이 있어 나는 오늘도 황혼에 집으로 간다.
아, 황혼은 아름다워 2005/09/06 [04:13] ⓒ한국아파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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